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셸 푸코 (문단 편집) === 사상의 의의와 철학사에서의 위치 === 푸코는 《광기의 역사》나 《임상의학의 탄생》과 같은 초기의 저작에서는 프랑스 과학철학의 전통을 이어받으며 언표체계의 집합으로의 [[담론]]을 인식론적 배경을 조건짓는 핵심적 틀로 바라보았다. 에피스테메로 통칭되는 무의식적인 인식의 배경이 시대를, 정확히 말하면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규정한다고 본 이 시기의 푸코의 사유는 다분히 구조주의적이었으며 본인도 이러한 평가를 그다지 거부하지 않았다. 이 시기의 그의 작업은 역사의 '불연속적인' 지층을 구분하기 위해 증거들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접근으로 이해되었다. 의학이나 과학에 대한 구성적 접근은 비록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푸코 특유의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 분석은 프랑스 외부의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형벌체계의 역사를 조망한 《감시와 처벌》에 이르러, 푸코는 근대의 본질적 속성이 언표구조나 담론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규율하도록 인도하는 복잡한 시스템에 있음을 논하며 분석의 지점을 [[담론]]에서 [[권력]]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즉 지층을 규정짓는 증거를 발견하려는 [[고고학]]적 시도를 넘어, 지층의 이면에 놓인 '지층화되지 않은 것'에 주목함으로써 지층이 지층화 될 수 있도록 인도했던 힘관계의 양상에 주목하는 [[계보학]]적 시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러한 시선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등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진행한 강의를 거치며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권력 자체를 특정 주체의 소유물이 아니라 개인의 신체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펼쳐져 있는 사회의 관계망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효과'로 바라보게 되었다. 푸코 중기 사상의 핵심을 관통하는 '통치성', '생명정치'와 같은 개념은 '합리적 개인'이라는 매개를 통해 개별적 신체와 집합적 사회를 동시에 구성하고 안정적으로 지속시키는 근대성의 '생산적 능력'[* 권력을 억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통념에 대비되는]에 주목할 수 있게 하는 시선으로서 21세기 들어 재조명되며 폭발적인 반향을 얻었다. 권력과 근대성에 대한 포괄적 설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푸코는 합리적으로 판단, 사고, 행동하는 [[주체]]가 비단 근대에 갑자기 등장한 계보학적 구성물이 아니라 서구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를 거치며 푸코는 '목자-양'의 관계로 표상되는 중세의 신학적 주체성과 근대의 자유주의적 주체가 실제로는 유사한 사유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어렴풋이 파악했다. 이를 보다 상세히 분석하기 위해 푸코가 선택한 사례가 바로 [[섹슈얼리티]] 즉 성의 계보학적 역사이다(《성의 역사》). 여기서 푸코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방대한 사료를 통찰하며 신체가 배태하고 있는 성욕을 관리하는 방법의 계보학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성욕이란 금지되거나 억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과 권력의 상호구성적 형성에 따라 특정한 방향(예를 들어 가족형성을 위한 수단)으로 배출되도록 촉진되어 왔음을 드러냈다. 특히 성욕을 통제하고 특정 방향으로의 배출을 인도하는 핵심 전략으로서 '이성에 의한 육체의 통치', 즉 '자기통치'의 실천적 기예가 서구의 역사를 관통하며 이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체화에 대한 독창적인 시선은 신좌파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생에 걸쳐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바깥에서의 사유'를 끊임없이 추구했다는 점, 그 사유의 광범위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대]], [[근대성]], 근대적 [[주체]] 자체에 대한 해석을 급진적으로 뒤집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은 좋던 싫던, 긍정적이던 비판적이던 푸코의 영향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푸코는 무엇보다도 의학이나 과학 지식의 분석에 국한되어오던 프랑스의 과학철학적 사유를 사회 전체를 해명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20세기 [[대륙철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푸코의 기여는 [[근대]]를 역사발전의 산물이나 변증법적 진보의 결과물로 바라보던 종래의 시선에서 벗어나 지식-담론-권력-주체가 복잡한 관계망에서 서로를 생산하며 발생하는 '일시적' 효과이자 구성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 있다. 푸코는 프랑스 [[과학철학]]을 과학에서 탈출시켜 세계에 대한 보편적 이론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이성과 합리성의 선험성을 강조했던 [[칸트]]의 철학을 전면에서 전복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브루노 라투르]]가 '푸코에게서 배운 것이 별로 없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근래 주목받는 [[가브리엘 타르드|타르드]]-[[화이트헤드]]-[[들뢰즈]]-[[라투르]] 등의 사유를 이어받는 일원론적 철학자들에게[* 21세기 들어 '신유물론'이라는 중요한 철학적 조류로 자리잡았다.] 푸코는 근대와 비근대의 이분법, 그리고 인간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20세기 철학자에 그친다. 그럼에도 '''"19세기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에서 푸코는 가장 완전한, 아마도 유일한 20세기의 철학자"'''라는 [[들뢰즈]]의 평은 푸코 철학의 사상사적 위치를 잘 함축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